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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되지않아.

본다는 것.

귤고양이 2017. 10. 29. 22:26

어릴 때, 아무도 없는 집에서 청소를 열심해 했다.

주로 그즈음에 하는 청소는 힘든 엄마를 돕기 위해 하는 행위들.

그렇다고 완전한 자발적 행위도 아니다.

엄마의 명령이 떨어졌고 그것을 내가 얼마나 잘 이행했는지를 보여야만 

엄마에게 위안이 되리라는 계산.

주방 바닥 한쪽켠의 얼룩을 닦다가 잘 닦이지 않아 다른 곳으로 이동했는데

그 순간 문득 든 생각.

아, 저 얼룩이 남아있으면 엄마는 내가 청소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겠지.

그 생각과 동시에 나는 그 장소로 돌아가서 열심히 죽을 힘을 다해 얼룩을 지웠다.


언젠가 에스엔에스에서 그런 얘기를 본 적이 있다.

달 탐사에 참여했던 사람 중에 누군가 한동안 우주에서 실종상태였던 적이 있다고 했나.

아무튼 기지에서 멀어져서 홀로 우주를 떠다니다 다시 운좋게도 돌아올 수 있었는데

그 잠깐의 시간동안 그는 달의 이면을 보았다고 한다.

그 때 그는 자신의 팀에서 떨어져 불안함 이전에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했나.

온 인류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달의 이면을 오로지 나 혼자만 보았다는 그 사실에 말이다.


시선.

시선은 권력이라고도 했다.

양자역학에선 보는 것에 따라 대상이 결정된다고도 했으니

사실 대단히 큰 권력일수밖에 없겠다.


어떠한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을 누군가와 함께 보고 싶어하는 것.

그것도 시선이 지니는 또 하나의 특징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제껏 살면서 혼자 무엇을 보았음에서 오는 짜릿함이나 쾌감을 느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위에서 언급한 사례에서도 보듯이 그만큼 나는 의존적이었는지도

혹은 나를 키운 환경들이 나에게 그런 시선의 권력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시선이 권력을 지니는만큼 외로운 것도 사실인 것 같다.

그러니 의식의 탄생을 추측하는 설 중에 

자연이 자신을 보아줄 시선이 필요했기 때문에.라는 이야기도 생겨날 수 있는 것이겠지.


홀로 무언가를 보고 그 경이로움을 오롯이 자신에게 담아두는 일.

나에게도 그런 게 가능할까.


문득 궁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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