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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사실은혼자인걸. (39)
깔깔깔깔
나의 어떤 성과를 응원하는 그 특유의 목소리를 들으면 묻어나오는 외로움이 있다.내가 더 잘나서 쓸쓸해지는 걸까. 나는 모친의 남근이기도 했지만,그의 남근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내가,그가 인정하는 어떤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냈을 때,그는 기뻐했고,또 한편으로는 씁쓸해했다. 내가 그를 앞섰다고 그가 판단했을 때 보이는나를 인정해주는 태도와 또 거기서 오는 특유의 따스함. 인정보다 실은 그 따스함이 좋았던 건데그걸 잘 구별하지 못했던 거겠지. 오늘도 내 논문에 필요한 자료를 택배로 보내준다는 전화에서나는 그 목소리를 들었다. 평생 고 작은 영역에 자기를 구겨담고 살아온 거라면 참 외롭고 쓸쓸했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왼쪽 가슴팍 아래에 싸하고 바람이 들었다. 우린 참 다들외롭게 살아간다.
내 아이도 나처럼 버림받은 느낌으로 살아가게 될까봐. 아직도 기억나.따뜻하기만 한 공간이었던 집이싸늘하게 한순간에 바뀌었던 그 때를. 더이상 밥을 해주는 손도, 나와 함께 가방을 싸는 손도 사라지고,깨끗하게 개어진 빨래도 더는 없이목욕 후에 이불 아래 따스히 준비된 속옷도모두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던 그 날들. 어쩌면 그리 따뜻하지 않은 엄마였는지도 모른다.그 상실이 너무도 갑작스러워 그 이전의 일들이 너무도 따스하게 미화되어내 가슴 속에 고착되어 붙어버렸는지도 모른다.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내 마음의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과 상처는 고스란히 사실이다. 내 인생에 아직 스스로 올라타지도 못했는데매몰차게 버림받고오롯이 방치되어 내 인생을 옆에서나 기웃거리고 있는 기분으로실은 꽤 오랜 시간을 살았다. 어쩌..
아마 그런 차이일 거란 생각이 들었어. 나는 나나 당신이나 다른 사람들이나 모두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고 전제하고 있는 것 같아.다만 그 두려움을 투사시키는 대상이나 방법이 각자 다르니나는 개개인의 특성들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겠어. 하지만 그 사람은 아마도두려움이나 외로움은 없다가도 있고, 있다간도 없는 그 무언가로 전제한 게 아닐까.두려운 건 외로워서고 외로운 건 사람이 함께 있으면 해결될 거라는 이해하기 쉬운 흐름.뭐 사실 이해하려해도 잘은 모르겠네. 아무튼 나의 경우, 모든 사람들은 자기 고유의 두려움이 있고우리 모두는 그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그리고 자기만의 방식을 이해하는 건 스스로가 세계와 연결될 또다른 방법을 찾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어.그래서 궁금..
지렁이.혹은 덜 자란 뱀.혹은 다른 벌레. 잘은 모르겠지만, 환대 같은 것도 있었고 꿈틀거리기도 했었다. 가족들 모두 함께 있을 땐 조카들이랑 웃으며 만지고 치웠지만그러면서도 내심 두려웠다. 가족들은 모두 떠나갈테고 나 혼자 남았을 때,점점 자라나는 저것을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다.실은 지금도 두렵지만, 함께 있어서 두렵지 않게 느껴질 뿐이지. 그게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한다. 지렁이는 자웅동체, 환대는 생식기관.뱀과 지렁이처럼 길쭉하게 생긴 것은 남근의 상징.하지만 지렁이의 쭈글쭈글한 주름은 질의 모양을 닮아 여성의 이미지가 되기도 할텐데. 오늘 하루 종일 그 생각하면서 즐거웠다.답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답을 생각하는 동안 즐거웠다. 그런 의미에서 꿈은 현실의 외연을 확장한다.그래서 늘 꿈이 좋다.
쉬는 날인데.평소 출근하는 것처럼 눈이 떠졌다.그래서 기분이 좋지 않다.화장실을 가기가 싫어 그걸 내내 참느라잠이 더 또렷하게 깨버렸다. 비싸게 구입한 빨래감이 떠오른다.일어나야지.다음주엔 따뜻한 침구에서 잠들어야지.세탁기를 돌리고 컴퓨터를 켠다. 확실히 가벼움이 주는 접근성용이가 있다.처음보단 조금씩 마음이 간다. 오늘 옷장 정리를 하지 않으면 다음주엔 모두 얼어죽는 거라던트위터 글이 생각난다.논문도 교수랑 다 뒤집어 엎어서 새로 쓰기 시작하는 기분이라할일이 너무 어마어마하게만 느껴진다. 논문 쓰다 보니 교수한테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너희들 것은 내가 대신 써주지 못해 미안해~ 하던 얘기가정말 말만이라도 눈물이 찔끔 났다. 논문과 옷장정리 게다가 거대한 식기건조대 처리.사장아주머니가 전화했을 때 반..
노래를 부른다.싫은데.아빠가 부르라니 부른다.아빠가 피아노로 재촉하니 부른다. 그래, 해 보자.갈 데까지 가 보자.나도 당신의 딸이다.연기하기 좋아하는 당신의 딸. 부르다 보니 내 안에 있던 감각들이 되살아난다.사라진 줄 알았던 그것이, 어쩌면 애초에 없다고 알고 있던 그것이 살아올라 소리를 메우고 살을 채운다.아빠와의 기억에 젖는 게 아니라,내 안에 있던, 아빠와 연결되는 커넥션을 회복한다. 어쩌면 터부시했는지도 모른다.하찮게 혹은 부끄럽게 여겨왔던 그것을 꺼내들고 먼지를 탁탁 털어 머리에 쓴다.외면해왔던 내 뿌리를 하나하나 찾아 내 육체에 축적한다.온몸으로 뛰어들어 맞이한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이었는데무척 오랜 시간동안이나 바깥에서 찾느라 허우적댔는지도 모르겠다.조금만 더 나를 허물면 회사가 나를 찾..
적지 않은 시간을 살아온 것 같은데 그 시간을 돌아보니 "나의 일"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 일상적으로 하는 설거지부터 월급을 받는 일까지. 언제나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 그 일을 하고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거대한 내 안의 공백, 그리고 이미 오래 전부터 내 안에 들어차 있던 그 무언가. 남근이라고 명명해도 좋을 어떠한 기둥.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미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더 공백에만 연연해 왔을지도.
우리 딸들은 매일 조금씩 버림받는다. 아버지로부터, 오라비로부터. 우리 딸들은 매일 서로 감시를 주고받는다. 어미로부터 물려받은 시선으로 게으를 새 없이. 사춘기가 되면서 찾아오는 몸의 변화와 더불어 또 하나 내게 덧붙여지는 무언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표정에, 내 행동에, 내 손짓에 조금씩 붙여지는 그 무언가를 긍정할 새도 없이 그것과 더불어 조금씩 외면당하고 버려진다. 흔히들 여성성이라 부르는 그것을 실은 한번도 제대로 긍정당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나도 모르게 들러붙은 그것을 애써 부정하고 떼어 내는 데 급급하다. 세상은 좋아졌고 딸인 네게도 아들과 똑같은 기회가 주어져 있어.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세상은 네게, 아들에게 주는 것과 꼭같은 것을 줄 거야. 그러니 나도 어찌할 줄 모르겠는 여..
좀비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비주얼이 혐오스럽고, 둔탁하기 그지없는 몸짓에 의사소통의 여지가 전혀 없음은 정말이지 돌아보기조차 싫은 대상이니까. 티비에서 한다. 중간부터 본다. 어, 나쁘지 않다. 월드워 z. 우선 차분한 흐름이 좋았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배우인 브레드피트조차 정말 소박한 인간처럼 보였으니까. 탁월한 성찰이라 생각되었다. 나를 해하는 기존의 그것이 나를 보호하고 생존케 하는 무언가가 된다는 설정. 좀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떤 정신과 의사(A)는 착취 본능과도 연결지어 이야기를 하고, 어떤 실존 치료 관련 학자(B)는 비실재와도 연결짓는다. 그래 둘 다의 말이 조금씩은 맞아떨어진다고도 생각한다. 좀비가 표상하는 건 B의 말대로 삶과 죽음이 없는 공간, 비실재 NCR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