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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깔깔깔
신뢰 본문
잊고 있었다.
그리고 자책하고 있었다.
어쩌면 생에 깊숙하게 박힌 자기검열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다시금,
과거의 관점을 전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나아감. 성장의 그것이라고 생각하는 근대적 사고의 결과물인지도 모르겠다.
너무 친밀해서 서로를 너무 좀먹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가 가진 좋은 것을 내가 좀먹어 버린 것은 아닐까.
후회와 자책으로
사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다시 마음이 움푹 파일 지경으로
그렇게 고통스러워했다.
근데
아니었다.
우리는,
신뢰가 있었다.
퇴화의 과정에 놓여 있는 걸 알아도
그걸 반복하는 걸 보아도
그 과정에 함께할 수 있었던 건
그 상태에만 머물고 싶지 않다는 서로의 강렬한 의지에 대한
보이지 않는 신뢰.
아니 어쩌면 너무도 뚜렷했던 신뢰.
그 상태로 계속 있을 거면 받아주지 않을거야.의 조건적인 태도가 아니라
한편으론 어렴풋이
한편으론 또렷하게
그 상태에 머물고 싶지 않음을.
그 상태에 머물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신뢰하는 그 힘을 알고 있었다.
집에 오는 버스에서 내내
"조건없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지. 그런 걸 찾아 허우적대느니 물건을 사는 게 현명한 거야.
물건을 산다는 건 내가 내민 조건과 교환한 가치를 분명히 인지할 수 있으니 얼마나 또렷하고 좋아."
라고 생각하며 왔는데
집에 돌아와선 전혀 다른 깨달음을 읊조리고 있다.
그렇게나 언어란 것은 가볍고 얄팍하다.
하지만 그래서 참 많은 걸 담을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서 아무것도 담지 못하기도 한다.